보석경 寶石經 _ Ratana Sutta: 삼보는 불자가 비빌 언덕

여기에 모인 어떠한 생명이든, 땅 혹은 하늘에 사는 모두는 행복하소서. 그리고 지금 들려줄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소서!

그대들이여 잘 들으소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며, 사람들이 공양을 올리니, 이들을 정성으로 보호하여 주십시오. 

이 세상 혹은 저 하늘 세상의 어떤 귀하고 소중한 보석도 여래, 부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실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세상의 어떤 것도 석가족의 성자가 고요한 선정 속에서 깨달은 욕망 없음, 집착 없음, 불사의 경지, 뛰어남 등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실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위대한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청정함은 선정으로 이루어지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배우는 선정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실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부처님이 찬탄하는 네 쌍으로 이루어진 여덟 가지의 성자들. 그들은 공양받아 마땅한 부처님의 제자들이며, 그들에게 올린 공양은 삶에 좋은 과보를 불러옵니다. 이에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실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굳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욕망을 여의고 최고의 경지를 성취하여, 그들은 자유의 열반을 성취하고 마음의 평안을 즐깁니다. 이에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실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땅에 굳건히 박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성문의 기둥처럼, 고귀한 수행자도 그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에 흔들림 없이 성스런 진리를 보는 사람들,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깊은 지혜로 부처님이 가르치신 성스런 진리를 분명히 이해하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훗날 태만해 질지라도 앞으로 여덟 번 이상의 생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에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지혜의 성취로서 내가 있다는 생각, 의심,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등, 이러한 것들이 있다면 이 세 가지 상태를 버립니다. 그리하여 네 가지 악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여섯 가지 큰 범행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에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어떠한 잘못된 행동을 숨길 수 없습니다. 청정의 길을 본 사람에게 그러한 은폐는 불가능하다 전합니다. 이에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여름 첫 달의 무더운 열기를 통해서 숲이 피어나는 꽃으로 장엄 되듯이, 최상의 선을 위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열반으로 인도하는 고귀한 법도 그와 같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누구와도 비길 수 없이 뛰어나신 부처님은 고귀한 열반을 아시는 분이며, 가르쳐 주시는 분이며, 성스러운 삶의 길을 불러오시는 분으로, 수승한 법을 가르치십니다. 이에 부처님은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지난날의 업은 다했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며, 마음은 다음 생으로의 집착이 사라졌습니다. 윤회의 싹이 잘리고 생의 집착을 여읜 현명한 사람은 등불의 불이 사라지듯 이 생을 떠나갑니다. 이에 승가는 참된 보석!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 모두 행복하소서.

여기에 모인 어떠한 생명이든, 땅 혹은 하늘에 사는 모두는 여래, 신과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 부처님을 공경합시다. 이에 모두 행복하소서.

여기에 모인 어떠한 생명이든, 땅 혹은 하늘에 사는 모두는 여래, 신과 사람들이 존경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합시다. 이에 모두 행복하소서.   

여기에 모인 어떠한 생명이든, 땅 혹은 하늘에 사는 모두는 여래, 신과 사람들이 존경하는, 승가를 공경합시다. 이에 모두 행복하소서.

 

경전 해설 – 삼보는 불자가 비빌 언덕

이 자리에 소개해 드리는 보석경寶石經 라타나 숫타는 남방의 사찰에서 삶을 위협하는 병과 액운의 소멸을 위한 의식에 많이 읽힌다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경이 설해진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 살아 계신 때 인도의 한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합니다. 날이 새기 무섭게 무수한 시체들이 들것에 실려 화장터로 나갑니다. 저 멀리 화장터로부터 시체가 타는 연기와 냄새가 바람에 실려 쉼 없이 마을에 닿고, 병은 오래도록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 바로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들이 오늘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나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의 잔혹함에 살아갈 희망을 잃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회의가 열리고 사람들은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고자 찾아갑니다. 부처님은 보석경을 설하시고, 제자들을 시켜 이 경전을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독경하게 하십니다. 오래지 않아 기이한 일들과 전염병은 곧 그쳤다 전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삼보에 대한 공경을 가르치는 부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사람들을 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조용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 스님들에 의해 경전, 부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읽히고 병과 여러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는 우연의 일치일까요 ? 아니면 불교 의식은 정말로 우리가 삶의 어려움을 없애는데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이 많은 사람의 신뢰를 가져간 지금, 어떤 불자는 불교가 가진 미신적 성격을 배격해야 한다 말합니다.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행과 깨달음에 관한 내용이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지요. 물론 모든 불자가 결국에는 수행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길로 나가는 것이 목적일 테지만, 부처님은 일방적으로 그러한 수행과 깨달음을 모든 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부처님의 삶을 전하는 이런 저런 얘기 속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대신 당장 육체적으로 정신으로 아픈 사람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항상 알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보의 공경과 믿음이 어떻게 초자연적으로 병으로 없앨 수 있냐 묻는다면 저는 논리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설명은 단지, 세상은 논리와 이성에 의해 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일이 우리 주위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보를 통한 진리의 가르침은 좀 더 진리에 가깝게 삶의 실상을 알게 도와주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설명 정도 입니다. 결국, 이 보석경과 그에 얽힌 얘기에서 중요한 것은 삼보에 의지하여 혹은 삼보와의 관계 속에서 불자들은 성장하여  삶의 갖은 어려움을 대처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삼보는 우리에게 비빌 언덕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 불자들과 출가하여 부처 모신 집에 사는 저에게는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는 든든히 비빌 언덕입니다. 세속을 살아가는데 있어 젓먹이 아이에게는 낳아준 어미가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될 테이고, 삶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도모하는 친구, 연인, 부부 사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든든한 언덕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내 삶, 어느 누구에게 비빌 언덕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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