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철학이다? Part 1 – 미신이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은 말의 폭력

한국인의 종교의 삶 속에서 불교는 우상숭배와 기복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미신이라는 말의 폭력이 사람들을 편견으로 한창 물들일 때, 서양에서는 정반대로, 특히 배운 지식인들 사이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소문이 떠오릅니다. 우매한 믿음이란 뜻의 미신 그리고 이성과 논리의 학문인 철학은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말이겠죠. 불교의 정체에 관하여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떠드는 혼란스러운 말의 잔치 속에서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정말 철학만 일까요?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

존재와 인식 그리고 가치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이성과 논리의 언어를 바탕으로 지식의 탑을 쌓는 학문을 철학이라 하겠지요. 겉으로보면 불교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사유의 학문인 철학이라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 귀를 간지럽히는 칭찬 같습니다. 하지만 그 주장의 바닥을 조심히 들여다보면 불교는 철학이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불교는 우상숭배 혹은 미신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우주와 존재를 창조하는 신을 가진 믿음 만이 종교라는 서양문명의 자기중심성이 깔려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교는 신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숭배하기에 종교가 되기에 부족한 미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는 창조의 신을 인정하지 않기에 종교가 아니라는 말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무엇일까요?

책  “부처님은 무엇을 가르치셨는가? – What the Buddha Taught?” 의 저자 스리랑카의 와폴라 라훌라 스님께서는 불교는 철학인가라는 위의 질문의 사람들이 뭐라 대답을 하든 그것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 남들이 우리를 개똥이, 미친놈, 아저씨, 사장님 등등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우리 존재의 모습과 그 내면의 가치가 그 이름들에 의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불교를 무엇으로 이름을 지어 부르건 진리는 진리 그대로이기에 변함이 없다 설명을 하십니다. 더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이름을 붙인 “불교”라는 그 이름도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 안의 담긴 내용, 즉 진리의 유용한 가르침 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말씀하십니다.

라훌라 스님의 대답은 불교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자칫 우리 삶과 무관하고 현실성 없는 말잔치가 될 것을 경계하신 점에서 의미가 있을 테지요. 사람들의 논쟁은 마치 각각의 눈먼 장님이 코끼리의 한 부분을 만지고 그 제각각의 경험을 말로 설명하는 것처럼 어느 하나 온전한 설명이 없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 것입니다. 그 설명이 아무리 장황하다 한들 현실에서의 코끼리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하지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말과 언어를 바탕으로 굴러 가며, 사람은 주변으로 부터 전해 들은 말에 영향을 받고 또한 그렇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말과 언어의 힘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과 시선에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테지요. 불교가 철학이라는 말은 분명 의미 없는 언쟁일 테지만, 그것을 듣고 현혹된 사람은 불교는 이러이러하다 혹은 이렇다는 선입견에 갇혀 부처님의 가르침과 삶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불행을 맞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장님의 설명을 들은 사람이 실제 코끼리를 보지만, 그 장님의 설명과 같지 않아 코끼리가 코끼리가 아니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비슷하게 불교는 철학이라는 이상한 소문을 듣고 맞다 생각한 우리 불자들은 불교는 순수하게 이성적이어야 한다 믿고 논리 저 너머 감성의 영역을 담당한 불교를 부정합니다. 이성과 합리성이 불교의 모든 것인 듯 착각하며 더 나아가 존재와 삶의 신비를 부정합니다. 그리하여 삶의 행복을 기원하는 불자들의 기도와 그것을 받아안는 스님들의 의식을 우매한 믿음, 즉 미신으로 바라보지요.

미신과 다르지 않은 말의 폭력

이처럼 불교는 철학이라는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불교는 미신이라는 주장과 전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흥미롭게도 한목소리로 고통의 삶 가운데 불자들이 부처를 향하여 기원하는 종교의 모습을 부정했습니다. 미신이다 철학이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흘린 그 말들은 분명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언어와 말이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힘에 의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철학이 불교의 전부인 듯 사람들이 얘길 할때, 불자들 역시 그 말에 영향을 받아 불교는 이래야 한다는 자기검열을 내면화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철학과 합리성의 잣대에서 벗어난다 생각하면 스스로가 미신이라 자기비하를 하였지요.

불교는 분명 철학의 영역을 포함하지만, 이성과 논리의 언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신비의 영역을 다룹니다.  인간이 노력을 통해 인간성의 완성을 이루고 신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 논리의 영역을 벗어난 인간성의 신비이며 그것은 믿음을 통해 가능한 영역일테지요. 이것이 누군가 철학이라는 말로 불교의 가능성을 한계 지으려 할 때, 불교는 철학만이 아니라 설명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하는 말의 폭력은 때때로 교묘하고, 겉으로 보면 듣기 좋은 말인듯 하나 그 뒤의 의도가 수상한 경우를 우리는 삶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Part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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