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믿음 – 그냥 믿지 마세요!

맞는지 거짓인지 결정적 증거를 통해 증명을 할 수 없지만, 그 뭔가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나를 믿어”라는 말처럼 믿음의 대상은 사랑, 우정, 정직, 순수함, 깨달음 등등의 인간과 인간의 내면의 모습일 수도 있고요. 또는 많은 종교 신화에서 보이는 신, 귀신, 유령, 천국, 지옥, 우주적 원리 등등 확인 가능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것에 대한 중요함을 얘기하며 그것에 대한 믿음은 종교적 삶의 근본 바탕이 됩니다. 

그 가르침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해도 불교의 깨달음, 열반, 무아, 연기의 개념들은 분명 믿음의 영역이지요. 그래서 믿음은 불교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불교의 경전은 자주 그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부처의 가르침은 눈멀고 어리석은 믿음’을 경계하며,  생각 없이 믿으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경전에서는 불교가 전하는 믿음은  명확한 생각과 판단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는 것으로 시작하며, 더 중요하게는 또 다른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라 설명합니다. 

믿음에 의해 사람은 홍수를 건너며, 부지런함으로 험난한 바다를 건넌다. 정진으로 사람은 고통을 건너며, 지혜에 의해 마음의 청정을 이룬다” (쌍윳다 니까야) 

불교의 믿음을 뜻하는 단어는 빨리어의 saddhā, 산스크리트어는 śraddhā 로 한문의 信 그리고 우리말의 믿음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것의 본 뜻은 ‘뭔가에 대하여 납득하여 가지는 마음의 확고함’이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 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살려 요즘은 믿음이라는 말 대신에 ‘확신 (conviction)’이라는 단어로도 또한 번역이 되고 있고요. 이렇게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증명하기 힘든 경험을 누군가로부터 듣고 생각하여 판단을 통해 그것을 진실이라 여기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기초적 의미인 듯합니다. 그리고 위의 인용된 경전 말씀이 보여주듯 바른 믿음은 깨달음의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각각의 종교가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죠. 그 많은 주장들 사이에 무엇이 정녕 진실인지 많은 사람들은 자주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듯 어느 날 자신들의 마을을 찾아오신 부처님께 사람들은 묻습니다. 

스님, 어떤 수행자 혹은 브라만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그의 종교를 얘기하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또한 다른 종교를 헐뜯고, 비난하고, 비판하며 진실이 아니라 얘기합니다. 그리고 다른 수행자 혹은 브라만이 이곳을 찾아와, 그와 같이 얘기를 합니다. 스님, 저희들은 누구의 말이 정말 진실인지 의심스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그 마음의 의심과 혼란이 당연하다 위로하신 부처님은 전통, 전승, 혈통, 유명한 이름, 경전의 권위, 단순한 이성적 추론과 판단 등의 이유로 믿음을 갖지 말라 당부하십니다. 대신 스스로  “그 가르침이 선한지 선하지 않은지, 비난받을 요소가 있는가, 또는 현명한 사람들이 비판할 여지가 있는지를 먼저 보라 말씀하십니다.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져 자신의 삶에서 실천이 되었을 때 해로움과 고통의 결과를 가져온다며 그 가르침과 믿음을 버리라 당부합니다. 

부처님의 대답은 종교가 얼마나 인간의 삶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를 나타내며, 한 종교의 내용이 아무리 말이 그럴듯하고 화려하고 번드르르하여도 그것이 실천이 개인과 사회에 해악과 고통을 가져온다면 진실일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개인의 믿음 잘못 왜곡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죠. 불행히 순수한 종교적 믿음이 점차 왜곡되어 폭력과 억압의 바탕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요즘의 현실을 통해 자주 목격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이는 그것이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을 벗어나 하나의 가능성 만이 진실이라는 맹신, 눈이 먼 믿음이 될 때이고요. 

그래서 불교의 경전은 맹목적 믿음을 중요한 번뇌와 구속의 하나로 ‘잘못된 견해에 관한 집착’ 또는 “독선적 믿음에 대한 몸의 구속”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불교의 수행에서 맹신은 어리석음, 무명에 기인한 것으로 분명히 극복하고 없애야 할 마음의 장애로 나타나고요.  

눈이 먼 어리석은 믿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불교 경전 곳곳에는 부처님 당시에도 맹목적 믿음을 가진 많은 사람이 있던 것을 소개하면서 바른 믿음의 자세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만약 사람이 믿음을 가졌다며, 그는 믿음의 진실을 보존하며나의 믿음은 이러하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깨달음이 없기에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라는 결정적 판단을 갖지 않는다” (맛지마 니까야) 

어느 날 마을에 부처님이 방문을 하셨다는 소식에 그 지역의 여러 명망 있는 브라만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그중 젊고 똑똑하며 자신의 믿음에 충실한 청년이 부처님께 브라만의 성전인 베다와 그 내용을 통해  자신들은 ‘오직 이것이 진실이며, 그 외의 것들은 거짓이다’라는 명확한 판단에 도달한다고 얘기하며 당신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습니다.

많은 브라만들 중에 베다의 내용을 직접 깨달아 ‘보고 아는’ 사람이 있냐 되묻고 청년으로 ‘없다’ 대답을 하자 부처님은 한 무더기의 눈이 먼 사람들을 비유를 듭니다. 전승된 자신들의 성전을 근거로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라는 주장은 보지 못하는 장님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얘기하는 근거 없는 주장과 같다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시 현명한 사람은 그러한 독선적 믿음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당부하시며, 어떠한 방법으로 참 스승을 찾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진리를 찾고 어떻게 수행을 하여야 깨달음이 이를 수 있는지를 설명하시죠. 

이처럼 불교는 스스로 체득한 궁극의 진리가 아니라면 믿음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라 얘기합니다. 열린 마음 가운데 참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듣고, 이것을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고 성찰을 통해 받아들여라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당신의 가르침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가르침의 시작에 부처님은 자주 얘기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들어라 (sādhukaṁ mansikarotha)”

부처님께서 자세히 들어라 하신 이 말은 마음을 집중하여 듣는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거듭하여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비판적인 사유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그 의미가 가지는 파생적 효과들을 함께 생각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교에서 믿음은 깨달음의 성취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삶의 고통이라는 윤리적 판단이 중요한 근거가 되며 눈이 먼 어리석은 믿음을 항상 경계합니다. 또한 열린 마음을 통해 진리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며 들은 것을 상식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생각과 성찰을 통해 받아들여라 얘기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믿음의 자세를 갖는다면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고통과 불행의 현실이 사라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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