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상도를 통해 배우는 부처님의 삶 1.-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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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누가 이 대지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누가 천상과 지옥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

그 누가 감동적인 법문 엮기를

솜씨있는 이가 고운 꽃을 꾸미듯 할까요?

 

45. 참된 수행자는 이 대지를 정복하고

천상과 지옥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수행자만이 진리의 말씀을 엮을 수 있습니다.

솜씨있는 이가 고운 꽃을 꾸미듯이”

법정스님 번역, 법구경 法句經 중 “꽃의 장”에서

 

 

통도사의 봄은 “솜씨 있는 이가 고운 꽃을 꾸미듯이” 홍매화가 경내에 지천입니다. 이 지천인 매화나무와 더불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성보 사찰  통도사에는 수많은 전각들이 서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의 초입에 자리한 통도사의 영산전靈山殿은 인도의 영취산에서 모든 존재를 향해 차별 없이 영원토록 진리의 가르침을 설하시는 법화경속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고요.

이 영산전 안에 불상을 중심으로 오른쪽 긴 벽면을 따라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18세 말엽 40여명의 스님들, 화승이 함께 그렸다 합니다. 모셔진 불화의 전체적인 규모와 완성도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많은 스님들의 노력이 함께 필요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결정적 순간들

1. 도솔내의상 兜率來儀相

2.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3.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4.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5.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6.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7.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8.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성경의 이야기를 묘사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수많은 그림처럼, 팔상도는 부처님의 삶과 관련한 불교의 경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타의 다른 종교 예술과 비슷하게, 팔상도를 포함한 불화 혹은 탱화는 부처님을 모신 성스로운 공간, 법당을 장엄하여 그곳을 찾는 불자들의 기도와 수행을 돕습니다. 정성과 함께 온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것을 완성해가는 화승에게 불화를 그리는 일은 하나의 수행이었고요. 또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옛날 팔상도는 그림을 통해 부처님의 알게 하는 교육의 도구였습니다. 이처럼 장엄, 수행, 교육의 목적을 가지고 그려진 팔상도는 부처님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그 안에 담아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 주지요.

부처님의 탄생과 그 후 열반까지 무수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담기에는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책이 열권도 모자랄 것입니다. 하여 여덟 장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팔상도는 부처님 삶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보여주는 짧은 요약일 것입니다. 여러 말보다 하나의 이미지가 때로 더 많은 인상을 남기고 의미를 주듯,  비록 그것이 간추린 요약이지만 한 장 한 장의 그림 안에 그려진 부처님의 삶과 다양한 불교의 교리, 가르침이 함께 녹아 있는 팔상도는 어떤 책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부처님의 생애를 아는 것이 중요한가?

교회에 가면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삶을 가장 먼저 배우는 일처럼, 불자에게 부처님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일은 믿음과 신행의 시작이겠지요. 불교라는 말 그대로의 뜻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불교를 있게 한 부처님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불교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해서 불자 혹은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팔상도를 통해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알기 쉽게 그림으로 불교의 본질을 설명하는 동시에, 팔상도는 한 인간이 노력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 삶의 모범을 잘 보여주지요. 그 외에도 불자는 아름답게 표현된 그림을 통해 그 속에 나타난 불교의 어려운 교리를 함께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 현실의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교훈과 조언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팔상도 = 사실 + 신화 + 교리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말을 했다는 장면이 보여주듯, 팔상도에 그려진 부처님의 삶은 역사적 사실 위에 불교 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신화적인 요소가 합쳐진 하나의 이야기죠.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그렇고 불교도 마찬가지로, 흔히 위대한 인간의 삶은 대체로 기본적 사실 위에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더해지는 과정을 겪습니다. 과학이 이룬 기술문명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위대한 성인들의 삶에 나타나는 신화적 요소들은 속된 말로 “뻥”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뻥”은 아무 의미 없는 거짓이 아니며, 그 종교가 가르치는 중요한 교리적 가르침을 함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팔상도에서 윤회, 업, 연기, 자비 등등 불교의 중요한 교리는 그 뻥 같은 신화적 요소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이 됩니다. 불자는 이야기를 통해 그림이 전하는 상징과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하나 발견함으로 좀 더 부처라는 한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아울러 불교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합니다.

그런데 왜 법화경의 사상을 표현한 영산전에 팔상전이 함께 모셔진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법화경은 부처님은 일대사인연, 즉 모든 존재는 부처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세상에 태어나셨다 설명하며, 팔상도가 그 법화경의 메시지를 잘 요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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