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아미타불

지난밤의 꿈속에 죽음을 마주하고 깨어난 아침은 왼쪽 심장에 아직 서늘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 꿈에 제가 타고 가던 차는 험한 산 간 중턱을 가파르게 내리며 달리다, 갑자기 길을 벗어나 계곡으로 떨어졌습니다. 분명 차가 땅으로 추락하기까지는 순간일 텐데, 떨어지는 차 속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습니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저는 당연하다는 듯 당신의 이름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다 잠을 깨었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천국 혹은 극락은 그저 죽음이 두려운 마음 약한 사람들을 위로하려 주는 아편 같은 거짓말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해서 당신을 부르다 깨어난 그 날 아침, 스스로 조금은 멋쩍어 머리를 긁적였지요.

오래 절집에 살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불혹의 나이를 넘긴 저는 자연스럽게 당신을 믿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실제로 극락이 있냐, 어디에 어떻게 있냐고 물으면 당신과 당신이 사시는 그곳을 저는 어떻게 잘 설명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극락이 마음에 있다는 말은 너무 뻔하건든요. 

아미타불, 무량수불 혹은 무량광불은 우리가 당신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죠. 그 이름의 뜻은 당신이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의 존재로 영원한 생명임을 알려주고요.

경전은 우리가 사는 이 고통 많은 사바세계로부터 서쪽 멀리 어디 당신이 살고 계시는 극락이 있다 말합니다. 당신이 가진 그 밝은 빛으로 그 세계의 구석구석을 비출 때, 그곳에 사는 모든 존재는 그 빛이 주는 행복으로 살다 그곳에서 바로 모두 부처를 이룬다 합니다. 해서 이곳 사바세계에서는 당신은 영원한 빛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희망입니다.

그렇게 희망의 빛이 되어 죽음이 임박한 무명의 마음을 비치기 오래전, 당신도 우리와 똑같은 어리석음 많은 중생이었지요. 그렇게 커다란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법장 비구라는 이름으로 살던 시절, 당신이 가졌던 거대한 원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당신이 세운 48가지의 거대한 원력은 허공 가운데 모래로 집을 짓는 것처럼 무모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꿈을 꾸고 커다란 계획을 세우는 일이야 누구든 할 수 지만, 어려운 일을 해나가는 실천이 어려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멈추지 않는 노력을 통해 당신은 그 소원대로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누가 물으면 당신 계신 극락이 어디에 있는지 제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르칠 수는 없지만, 저는 당신의 영원한 빛이 되는 그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를 위한 선한 바램과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삶의 위로가 되는가는 얘기를 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바램과 원력을 가져야 할까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원력은 짧은 한 생의 조망을 넘어 윤회하는 시간의 무한한 순환을 관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러한 커다란 원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겨울이 오기 전 서둘러 저도 그 원력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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