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 고요히 탑이든 마당

미국에 아무 가족이 없다는 내 말에 자주 미국 친구들이 물었다, 떠나온 그 곳이 그립냐고.

인정머리 없게 들릴테지만, 태평양 건너 그곳에 가슴 촉촉히 적시며 그립고 보고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이 말인 즉,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했던 내 삶의 기억들이 그곳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그나마 몇 떠오르는 내 행복의 리즈 시절이라면, 해인사 큰절에 살다 작은 암자 희랑대에 올라가 주지스님 그리고 맘씨 좋은 공양주 보살님과 살던 겨울 추억.  그리고 여름이면 인적없는 계곡에서 스님들과 홀딱 벗고 수영하고, 철따라 꽃피우고 단풍들던 탑을 바라보고 살던 햇중 때의 봉암사.

위태위태 뒤뚱거리면서 아직까지 먹물옷 입고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몇 떠올릴 수 있는 그 행복의 시간들이 모두 출가 후 절집 안에 있기 때문이었던듯 싶다.

그러고 보니, 그리운 것이 …  있다.

절집의 탑든 고요한 마당이 그립다. 방에 누우면 작게 열린 미다지 문 사이로 보이던 대청 너머의 그 탑을 안은 빈 마당.  그리 종일 누워 지나가는 바람맞은 풍경소리가 듣고 싶다.

이 겨울, 눈을 입은 탑과 고요하게 흰 그 절 마당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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